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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임금의 분부 [綸音]

임금께서 분부하시기를 “불쌍타, 많은 무리들아! 모두 나 한 사람의 말을 듣도록 하라. 우리 여러 선왕들의 성스러운 신령이 서로 이어져 큰 계획과 가르침이 매우 밝아서 윤리를 밝혀 사람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정학을 숭상하여 나라의 풍속을 오로지 바르게 하시니, 집집마다 수사(洙泗)의 가르침을 따르고, 사람마다 낙민(洛閩)의 글을 암송하며, 충효와 정렬(貞烈)을 대대로 전하고, 사·농·공·상으로 각각 생업을 편안하게 안정시켜 온 것이 지금까지 500여 년이 넘었도다.

나처럼 우매한 사람이 대를 이어 왕위에 올라 아침저녁으로 다만 두려워하면서 돈독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베푼 것이 오직 이 뿐이다. 무릇 어찌 세상의 풍속이 땅에 떨어져 변하고, 망령되고 거짓된 무리들이 우리의 세상을 속여 미혹하게 하며, 우리의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를 매우 빨리 하면서 깨우쳐주지를 않으니,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물며 또한 너희들은 감히 돌을 쌓아 진영을 만들고, 당간에 깃발을 만들어 걸고서, 의(義)를 주창한다고 일컬으면서 글을 써서 방을 붙여 사람들의 마음을 선동한다. 너희들이 비록 어둡고 몽매하다고 하지만, 어찌 나라의 큰 의리와 조정의 약속을 듣지 아니하면서 감히 핑계를 대고 재앙을 떠넘겨 사람들의 재산을 탕진하게 하고, 농민에게 농사를 지을 시기를 놓쳐버리게 하니, 이름은 비록 의를 주창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난리를 일으키는 것이다.

너희들은 계속 뒤따라 모여든 많은 무리를 믿고 스스로 방자하여 조정의 명령도 듣지 않으니, 옛날부터 지금까지 어찌 이러한 의리가 또 있었겠는가? 이것은 모두 나 한 사람이 너희들을 이끌어 편안하게 하지 못한 탓이며, 또한 여러 고을의 목민관과 수령들이 너희들을 부추겨 벗겨먹고 곤박하게 괴롭혔기 때문이다. 탐욕스러운 장수와 마음이 시커먼 아전들은 장차 처벌을 할 것이다. 오직 내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 그 백성들이 스스로 의롭지 못한 것에 빠지는 것을 보며 슬퍼하고 안타깝고 측은하게 여기거늘 어찌 어둠을 열어 밝은 곳으로 향하게 하는 길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에 알려온 사실을 근거로 하여 너희들의 고충을 모두 알았다. 이에 행호군(行護軍) 어윤중(魚允中)을 선무사(宣撫使)로 삼아 나를 대신하여 달려가서 널리 타이르고 설득하게 한 것인데, 이 또한 먼저 가르치고 뒤에 처벌하는 것이 옳다. 너희들은 부모의 말을 듣는 것과 같이 여겨 반드시 감동하고 서로 알려 해산하도록 하라.

너희들은 모두 양민이니 각각 스스로 물러나 돌아가는 사람은 마땅히 토지와 재산을 되돌려줄 것이므로, 이로 하여금 편안히 생업에 힘쓰게 할 것이니 의심하거나 겁을 먹지 않도록 하라. 이와 같이 설득하는 말을 들은 후에도 너희들이 한결같이 고치지 않고 흩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당연히 큰 처분을 내릴 것이다. 어찌 너희들로 하여금 다시 같은 하늘을 덮고 살 수 있도록 용납하겠는가? 너희들은 시원하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라의 법을 어기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초 2일 묘시에 보은군 장내리에 동학인들이 집회를 한 일에 대해 방어하고 지키기 위해 병영의 군대 100명이 대관(隊官)을 정해 호위하게 하고, 이달 초 1일 유시 쯤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들이 머무르는 곳과 음식을 제공하는 절차는 보은군에서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고, 군사들은 보은군 읍내에서 머무르고 접대하도록 먼저 보고하였는데, 많은 군사들에게 제공할 양식은 고을의 힘이 적고 약해 마련할 수 없다고 보고하기에 이를 참작하여 시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초 3일 오시(午時, 오전 11∼오후 1시)에 보은군 장내리에 모인 동학인들이 이 달 초 1일에 도어사가 왕명을 널리 알리고 타이를 때에 3일 안에 물러가 해산할 것이라고 하여 이를 받아들인 연유는 이미 보고한 바 있습니다. 저들이 물러가는 상황은 계속해서 정탐해 보니 그 두령인 최도주(崔道主)와 서병학(徐丙鶴) 등은 초 2일에 밤을 이용해서 도주하였고, 그 무리 수 만 명은 모두 흩어졌으며, 나머지 있던 사람들은 단지 병들어 눕고 식사한 빚[食債] 때문에 잡혀있는 사람 몇 명뿐이어서 또한 돌아가도록 했다는 사정을 보고하오며, 장계의 초본은 또한 베껴 놓은 후에 보고합니다.

주석
수사(洙泗)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라는 강의 이름인데, 공자가 이 근처에서 제자들에게 도를 가르쳤으므로 공자의 문하라는 뜻이다.
낙민(洛閩) 정호(程顥)와 정이(程頤)는 낙양(洛陽) 사람이고, 주희는 민중(閩中)이므로 이 두 학파인 정주(程朱)의 학문을 말한다.
선무사(宣撫使) 임금이 백성을 타이르고 위무하는 임무를 주어 보내는 사자를 말한다. 순변사 전운사 등 사(使)가 붙은 임시직은 모두 임금이 임명함을 뜻한다. 당시 어윤중은 양호도어사의 직함을 받고 겸임으로 선무사의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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