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계의 초고 [狀啓草]
3월 26일 [三月 二十六日]
신은 3월 18일 궁중에서 내려주신 봉서(封書)를 삼가 받았습니다. 봉서에 이르기를 “이른바 동학의 무리들이 서로 불러 모으고 선동하여 속이는 말로 현혹시켜 사람들을 부르고 유인하여 무리를 이루고, 온 마을에 서로 선동하여 시끄럽게 거짓말을 퍼뜨리며, 아직도 다시 가끔씩 호서와 호남의 사이에 주둔하여 행적이 상도(常道)에 어긋나고 성세를 헛되이 벌이고 있다. 왕법이 있으니 어찌 조치하여 없애는 것이 어렵겠는가마는 모두 우리의 적자이므로 교화한 다음에 처벌하는 것이 어진 정치가 우선해야 하는 것이다. 경을 호서·호남의 도어사에 임명하니, 오로지 그들이 모인 곳에 가서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의리를 깨우쳐주어 각각 돌아가서 편안하게 생업에 힘쓰게 하고, 혹시라도 따르지 않으면 이는 임금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다. 경은 즉시 장계를 다듬어 마땅히 처치하는 방도가 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위대하시다. 임금의 말씀이여! 동물들도 감동시키고 나무와 돌도 알아듣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하물며 이 무리와 백성들이 어찌 공경하여 따르지 않겠습니까? 신은 그날로 행장을 꾸려 길을 나서 먼저 충청도 보은군에 이르렀는데, 길에서 살피고 탐문하여 동학 무리의 소굴을 캐어보니, 이 무리들이 뻗은 것은 이미 몇 해가 되었고, 이미 전국에 두루 번져서 무리가 거의 수만 명이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오랑캐를 물리친다고 핑계하지만 속으로는 반란을 생각하는데, 실정이 괴이하고 비밀스러우며 무리들이 서로 거짓 선동의 말을 합니다.
신은 3월 26일 공주영장(公州營將) 이승원(李承遠)과 보은군수(報恩郡守) 이중익(李重益)과 순영의 군관(軍官) 이주덕(李周德)을 데리고 보은군 동쪽 15리 되는 속리면(俗離面) 장내리(帳內里) 앞 냇가의 동학 무리가 모인 곳에 이르러, 전하의 뜻을 널리 알리고 설득하여 뜻을 따를 것인지 어길 것인지 그 의리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저들은 과연 장황하게 변명만을 늘어놓다가 끝내는 해산한다고 알려온바, 그들이 보낸 문서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저희들의 뜻은 마음을 합쳐 왜와 서양을 배척하여 국가를 위해 충성을 바치려고 한 것이거늘, 감사와 수령이 흉악한 무리[匪類]로 대하면서 침범하여 약탈하고 학대하는 것이 끝이 없습니다. 지금 만약 갑자기 스스로 해산하면 사람들은 반드시 흉악한 무리로 인식하여 저희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원하건대 이러한 사정을 조정에 보고하여 현명한 전하의 뜻을 얻어 같은 백성으로 인정된다면, 삼가 마땅히 해산하여 생업에 힘쓰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머지 무리들을 흩어지게 하고 다시는 모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문서와 문답을 기록한 문안은 모두 올려 보냅니다. 문서는 보여준 후에 그 실상을 취하여 기록하려고 옮겨 베끼지 않고 직접 원래 상태의 제목에 수결하여 올려 보냅니다. 신의 위엄과 명망이 두드러지지 않아 즉시 해산시키지 못한 것이 황공하여 감히 아뢰오니, 오직 삼가 처분을 기다릴 뿐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실을 자세히 아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