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사간 권봉희 상소 [前司諫 權鳳熙 上疏]
삼가 생각하건대 신은 재주와 자질이 용렬하고 어리석으며 학식이 얕고 짧아 신하가 구비해야 할 한 가지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태양이 비치는 곳에 해바라기는 스스로 기울어지고, 노(魯)나라에 근심이 있으면 별자리도 근심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만 번 죽을 각오로 감히 어리석더라도 하나의 얻어들을 말씀[一得之愚]을 올리오니,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정신을 잠시 머물러 두고 밝게 살펴주시옵소서.
지금 나라의 시세를 돌아보건대 흉년이 거듭되어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저축이 고갈되어 경비를 조달하지 못하며, 기강이 해이해져 명분이 전부 사라지고, 바른 도[正道]는 미약하고 희미하여 이단만 횡행하니 마치 큰 솥에 물을 끓이되 속은 끓고 있으나 바깥쪽은 말라붙으며, 늙은 고목이 벌레에 상하여 속은 비어서 껍데기만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이러한 때에 불을 끄고 회생할 방도를 시행하지 않으면 장차 솥은 끝내 깨어지고 나무는 마침내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삼가 어리석은 생각을 다음과 같이 올립니다.
유학[聖學]에 힘써 영원한 천명을 기원하고, 성실한 마음을 쌓아 어진 인재를 찾아내며, 수령들을 잘 선택하여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몸소 절약하고 검소하여 재정을 넉넉하게 하며, 기강을 바로 세워 백성의 뜻이 정해지게 하고, 장수가 될 만한 재목을 선발하여 군율을 명확하게 하며, 바른 도[正道]를 지켜 사설(邪說)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이 뿐입니다. 다음 조목에 따라 말씀드리고자 하오니 잘 읽어보아 주십시오.
이른바 유학에 힘써 천명을 기원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오호라! 오직 정밀하고 한결같이 하여 진실로 그 중용을 잡으라고 한 것은 순(舜)임금의 학문이고, 편벽되지 않고 치우치지 않아 그 근본이 있으라고 한 것은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학문입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풍취[姿氣]의 순수함과 어진 마음의 융성함이 순임금과 무왕보다 못하지는 않지만, 왕위에 오른 지 30년이 되어도 은택(恩澤)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헤아릴 수 없고, 백성들이 다스려지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진실로 타고난 지혜의 면모로써 학문에 힘쓸 겨를이 없었으므로 그 이치를 밝혀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대개 제왕의 학문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름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학문은 어려서는 배우고 장성해서 행하고자 하지만, 제왕의 학문은 배우고 행하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 나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옛 경서를 헤아려 한결같이 정령(政令)을 발동하고, 성현들의 가르침을 거울삼아 한결같이 혜택을 시행하며,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고[夙興夜寐], 그 덕을 힘쓰고 새롭게 하며, 몸을 삼가하고 학문에 힘써 하나의 생각이라도 혹여 착오가 없게 하십시오. 시중에 떠도는 말들을 명확하게 살펴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지 않도록 하고, 자기의 사사로움을 극복하고 제거하여 한결같이 공정으로서 표준을 만들며, 궁중의 금법(禁法)을 엄숙하고 깨끗하게 하여 오직 바른 선비들을 가까이 하고, 널리 경연(經筵)을 열어 선비들을 자주 접촉하십시오. 삼가 방도가 되는 책을 가까이하여 성현으로써 스승과 벗을 삼아 경서를 강론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반드시 몸소 체험하고 인식하며, 날마다 향상되고 달마다 전진하여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고, 그 지위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천심(天心)을 차지하십시오.
귀에 거슬리는 말이 있으면 반드시 도리에서 구하고, 사람을 뽑아 선행을 행하게 하되 반드시 자기를 반성하십시오. 일마다 근본을 세우고 말마다 중심을 잡아 위로는 하늘과 조상들이 위탁한 뜻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의 엄정한 여망에 부응한다면, 타고난 운명은 스스로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모든 일이 잘 이루어져, 백성은 다스림을 기약하지 않아도 편안해질 것입니다. 무릇 이와 같으면 많은 양기(陽氣)들이 모여들고 모든 신들이 서로 도와주어 한 몸은 건강해지고 스스로 하늘이 도와줄 것이니 어찌 저 요망한 것들이 기도(祈禱)하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확연히 고치고 깨달아 일체 금단하는 것 역시 유학 중의 한 가지가 될 뿐입니다. 삼가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른바 성실한 마음을 쌓아 어진 인재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사전(思傳)』에 이르기를 “올바른 정치를 함에는 인재를 얻는데 있다”라고 하였고, 맹자는 이르기를 “어질고 현명한 인재가 없으면 나라는 텅 빈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명석하고 의로운 임금은 어진 인재를 구할 때 목마른 것과 같이하여 초빙할 때 폐백을 반드시 드리는 것은 진실로 만기(萬機)의 정무(政務)로서 많은 백성을 혼자 판단하고 혼자 다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어질고 덕망이 있는 사람을 뽑아 정치를 맡기고, 뛰어나고 재주가 있는 사람을 불러 벼슬을 주며, 반드시 상과 벌을 주는 것을 공평무사하게 하면 다스리는 것이 모두 반드시 신장되고 백성과 나라가 편안해질 것입니다. 우리 열성조(列聖祖) 임금들은 이러한 도리를 따랐기 때문에 나라가 오래도록 이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선왕들의 법을 거울삼아 오랫동안 다스릴 바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옛말에 이르기를 “인재는 다른 시대에서 빌려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조정에는 어질고 뛰어난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며 초야에도 또한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므로 오직 위에서 잘 선발하여 믿고 맡기고, 성심으로 그들을 찾고 불러들이며, 덕망에 맞게 지위를 부여하고, 재주에 맞게 관직을 주며, 널리 밝게 하고 힘써 전하를 돕게 함으로써 모든 법이 바르게 된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삼가 밤을 새우고 신하들이 할 일을 직접 하여 하나의 벼슬과 하나의 직무도 몸소 살피고 점검함으로써 3정승과 6조판서가 자리만 지키면서 녹봉을 먹도록 하십니까?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임금이 좀스럽게 자질구레하면 신망이 있는 신하들이 게을러지고 모든 일들이 무너진다”라고 하였는데, 불행하게도 그와 같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지금부터 결단하여 자신에게서 반성해서 찾고 깊이 생각하십시오. 여러 의견들을 물어 평소 임금의 마음을 기대고 중하게 여기도록 조정과 시골에서 도울만한 명망가를 신중하게 선택하여 백관의 윗자리에 앉혀, 분발하고 노력해서 전하를 잘 보좌하고 일을 도와 은혜를 베풀게 하십시오. 또한 마음가짐이 공평하고 사무를 널리 주관할 만한 사람을 가려 뽑아 6부를 맡게 하고,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것에 따라 승진시키고 벌을 주어 각각 그 아래 사람을 거느리게 하십시오.
경연(經筵)에는 반드시 도가 있는 선비를 배치하여 마음을 털어놓고 성의껏 인도할 수 있도록 책임을 맡기고, 양사(兩司)에는 반드시 강직한 사람을 선발하여 간곡하게 간하는 도리를 다하게 하며, 그 나머지 각 관사 또한 모두 정성을 다하여 공무(公務)에 힘쓰게 하여 그들 벼슬아치들이 게으르지 못하게 한다면, 다스리는 도리는 위에서 넘쳐서 자연히 아래 백성에게 미칠 것입니다. 무릇 이와 같이 한다면 구중궁궐에서 깊이 팔짱을 끼고 있어도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 서로 명백해지고 위의가 세워져, 이루고 다스리는 교화는 얼마 걸리지 않아 이루어질 것입니다. 삼가 전하께서 살펴보시기를 빌겠습니다.
이른바 수령을 가려 뽑아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백성은 오직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얼굴과 기상이 단아[愷悌]한 군자는 백성의 부모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자애롭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서전(書傳)』에 이르기를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아서 물은 배에 실릴 수 있고 또 배를 뒤엎을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선왕들께서는 사랑할 것과 중요하게 여길 것, 그리고 두려워 할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청렴결백하고 백성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잘 선발해 관리로 삼아 생업을 안정시키고, 쌓인 폐단은 줄여주며,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은 따라서 좋아하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은 따라서 싫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스림이 위에서 잘 이루어져 백성들은 아래에서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여 수령이 된 사람들은 다만 백성들을 벗겨 자기를 살찌우며,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자신이 잘 살줄은 알지만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나라에 보답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니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진실로 승진하는 것을 좋은 일로 여겨 기만하여 뇌물을 바쳐 높은 벼슬로 옮기기 때문입니다.
아! 조정과 백성 사이는 서로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왕조의 오백년 동안 은혜를 입은 백성이 거의 모두 탐관오리의 손에서 놀아나도 불쌍한 줄을 모르니, 어찌 ≪임금이≫ 백성의 부모가 되겠으며 백성이 오직 나라의 근본이 된다는 뜻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신이 듣기로는 이러한 무리들이 탐욕을 자행하면서 모두 공언(公言)하기를 “몇 차례 진상(進上)이 배정되는 날에는 채무가 배분되는데, 모두 전에는 없던 비용입니다. 나머지는 긴요하고 중요한 뇌물이며, 많은 문서들 또한 어쩔 수 없이 별도로 해야 하니, 적은 고을의 형편과 쇠잔한 경비로써 어떻게 분배하여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들의 형편이 측은하고 불쌍함을 알지 못하지는 않지만, 산더미 같은 채무가 머리를 눌러서 그것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는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나라에 보답하는 것인 줄 알아 차마 백성을 학대하지 못해 한두 번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그의 관직이 보장되기 어렵고, 그 중에 조금 지각이 있는 사람은 차라리 도랑과 골짜기에서 굶어 죽을지언정 벼슬아치가 되는 것을 단념한다고 합니다.
전하께서는 차마 적자(赤子)를 보호하는 마음으로 반드시 두려워하고 삼가 깊이 생각하시어 진상을 각 읍에 배정하는 것을 모두 없애십시오. 지금의 벼슬아치는 반드시 가려 뽑되 먼저 관찰사를 깨우치게 하여 실상에 따라 포폄(褒貶)해서 뭇 사람들에게 마음이 공명정대함을 보인다면, 뇌물 또한 함부로 받지 못하고 예물 또한 공공연하게 행해지지 않고, 백성들이 실제로 혜택을 받고 나라의 근본이 영원히 튼튼해져, 배가 전복되는 근심을 없앨 수 있고 윗사람을 가깝게 여기는 의리가 생길 터이니, 또한 어찌 오늘날의 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임금께서 살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이른바 몸소 근검절약하여 재정을 넉넉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옛날에 요임금은 띠로 이은 지붕과 흙으로 섬돌을 만들었으나 길거리의 아이들은 풍요로움을 노래하였고, 우임금은 변변치 못한 음식을 먹고 거친 의복을 입었는데 공자께서는 거의 자신과 차이가 없다고 칭송하였습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일은 높일 만하지만, 우리나라 선조대왕(宣祖大王)께서도 사치하는 풍속이 점점 흥하는 것을 염려하여 여러 신하들을 모아 놓고 속옷을 열어 보이면서 말하기를 “나의 옷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경들은 모두 보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신하들이 분부를 받들어 우러러 보니 무명옷 6∼7승(升)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정종대왕(正宗大王, 정조)께서도 입은 모시옷을 여러 차례 세탁하여 실올이 누더기가 되었는데 가까운 신하가 건의를 하자 하교하기를 “내가 어찌 옷 한 벌을 아깝게 생각하겠으며, 내가 다 입어 보지 않은 옷이 있어야만 다른 사람에게도 권장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위대하도다. 임금의 말씀이여! 하늘을 두려워하고 몸을 삼갔기 때문에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보전하여 오늘날 훌륭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전하께서는 두 임금의 큰 기반을 받고 두 임금의 큰 공적을 계승하셨으니 두 임금의 마음 쓰는 법에 어찌 한 치라도 어그러질 수 있겠습니까? 신은 감히 전하께서 입으신 옷이 과연 두 임금의 무명옷이나 모시옷과 같이 여러 차례 빨아 입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만약 그러하였는데도 많은 신하들이 사치를 심하게 하였다면, 어찌 법에 따라 통렬히 금지시키지 않으십니까?
신은 감히 말씀드리건대 전하께서 검소하고 절약하시는 것은 두 임금의 성덕과 차이가 없으나, 지난 번 경사를 축하하는 날에 신 또한 군대의 직함으로 조정의 반열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하사하신 음식이 매우 풍성하여 영광스러운 감정이 지극하였고, 계속해서 속으로는 임금께서 하사하신 것이 비록 한 잔의 술과 한 그릇의 과일이라도 신하가 된 사람으로 누가 황송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군색하게 재정을 꿰어 맞추는 때에 이처럼 사치가 심해 장차 허물이 커질까 걱정하였습니다. 또한 여자 악공들의 비용으로 헛되게 소비한 것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전에도 이러한 예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이 절제가 없어서는 아니 됩니다.
삼가 계속 원하옵건대 이제부터 선왕들의 가르침을 우러러 체험해서 확연히 고치시고, 의복과 음식, 기물과 용기는 오로지 토산품을 애용하며, 상을 내리고 연회를 베푸는 것도 반드시 옛날 관례대로 따르고, 마땅히 써야 할 곳도 절용을 생각하고, 소비해야 할 곳도 매번 비용을 살펴 사용한다면 이상한 물건과 기이한 장난감은 자연히 전하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국가의 재정도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신다면 아래에서 위를 따르는 것이 마치 바람이 풀을 쓰러뜨리는 것과 같아 조정과 초야(草野)는 모두 도와서 화합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전하께서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른바 기강을 세워서 백성의 뜻을 안정시킨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관자(管子)가 이르기를 “예의염치, 이것이 사유(四維)인데, 사유가 널리 퍼지지 않으면 나라는 곧 망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그 말에 따라 “천리(天理)에 따라 적절하게 꾸미는 것이 예(禮)이고, 인심을 따라 억제하는 것이 의(義)이다. 예의라고 하는 것은 기강의 본체이고, 기강은 예의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다. 염(廉)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비례(非禮)가 나에게 더해지더라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치(恥)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잠시 의롭지 못함을 행하면 시장에서도 매질을 하는 것이니, 염은 예가 쓰이는 것이고, 치는 의리의 단초가 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옛날에 성왕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사유에 힘을 써서 높고 낮음과 위와 아래를 구분하였고, 예로써 품격과 절도를 갖추고, 의로써 쓰거나 버리는 것에 단호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취하고 줄 때에는 우리가 청렴한지를 헤아려서 살피고 저들의 수치심을 보고 그것을 절충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천리의 당연한 법칙이고, 인심(人心)이 어그러질 수 없는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 대하고 신하는 임금을 의로써 섬기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염치로써 대접하면 다른 사람 또한 우리와 같이 대접할 것입니다. 이것이 미루어 사방에 이르게 되면 모든 백성들에게 두루 퍼져서 위와 아래가 서로 믿고 교화로 다스리는 것이 점점 융성해져 조정에 있는 사람에게는 겸손하고 양보하는 풍조가 생기고, 시골에 있는 사람에게는 힘쓰려고 하는 기질이 생기며, 노예와 병졸 또한 모두 편안히 분수에 맞게 스스로 처신하여, 죄를 짓는 것이 무슨 일인지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찌 사유를 널리 펼쳐서 기강이 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말세에 내려오면 임금은 스스로를 성스러운 마음을 가지지만 간신은 단지 훔치려는 계책을 품게 되어, 법과 기강이 땅에 떨어지고 위태로움이 극에 달하게 되니, 관자(管子)의 말이 또한 어찌 우리를 속이겠습니까?
삼가 마음속으로 우리 왕조를 생각해보면 도학(道學)을 존중하고 숭상하며, 인간의 기강을 세우는 것을 부식하며, 예의가 풍속이 되고 법이 자세하고 명확해져, 위와 아래 수천 년 동안 함께 법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근래에 와서 나라의 기강이 이미 가라앉고 풍속도 아름답지 못해 조정에 있는 위 사람들은 염치를 숭상하는 것을 볼 수가 없고, 서울에는 분수를 침해하는 습속이 많아졌으며, 쇠약해지고 나태해져 이상한 일들이 계속 생깁니다. 군대에서는 가둔 죄수를 함부로 탈취하고, 관청의 노비가 관리를 구타하는 것이 매우 심합니다. 마땅히 조금이라도 분수와 의리가 있다면 이러한 무리들이 어찌 거리낌 없이 이와 같이 하겠습니까?
5백 년 동안의 예의가 이와 같이 무너졌으니, 만약 고의(賈誼)가 오늘의 모습을 보았다면 어찌 다만 한숨을 쉬고 눈물만 흘렸을 뿐이겠습니까? 오호라! 병이 깊어 고질이 되어 진실로 하루아침에 곧바로 치료하기 어렵고 여러 처방을 쓸 수 없다고 앉아서 그 운명만을 기다리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기운과 운수 때문에 어찌할 수 없다고 하지 마시고, 속으로 깊이 생각하고 과단성 있게 정치를 하여 명확하게 법도와 기강을 펼치고 염치와 예의를 높이고, 옛날의 더러워진 풍습을 모두 유신(維新)하게 하며 예로써 신하를 대우하고, 멀고 가까움을 구분하지 말고 법대로 일을 처리하며, 귀하고 천한 것을 가리지 말아 사람들을 모두 감복시킨다면, 나라의 법이 세워지고 백성의 마음이 안정될 것입니다. 이 또한 전하께서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른바 장수가 될 만한 인재를 선발하여 군대의 규율을 명확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옛말에 이르기를 “임금이 장수를 가려 선발하지 않으면 적국에게 그 나라를 주는 것이고, 장수가 병사를 알지 못하면 적국에게 그 병사를 주는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른바 나라의 큰 일이 여기에 달려있다고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태평한 지 오래되어 문관은 안일에 빠지고 무관은 기강이 해이해 있는데, 병인양요(丙寅洋擾)는 수백 년 만에 처음 생긴 사건이었습니다. 그때는 서울이 텅 빈 상황이었으나, 다행히 하늘의 덕에 힘입어 저들이 곧 물러가 다행히 무사하게 되었습니다. 정축년(丁丑, 1877) 일본인이 쳐들어 왔을 때에도 화친이 이루어져 물러갔기 때문에 오히려 한 번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각 나라가 강화(講和)하여 주둔하면서 통상(通商)을 벌이고 있는데, 만약 이 때에도 병사에게 일이 없다고 하여 장수될 만한 인재를 선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각 군영의 병사들에게 기예(技藝)를 가르치고 있으니 이에서 전하의 뜻이 매우 힘쓰고 있음을 볼 수가 있지만, 장수에 선발되어 직임을 맡은 사람들이 다만 대대로 무반 가문에서 차례로 천거되어 진출한 사람이므로, 신은 과연 그들이 무예를 갖추고 병법 등 여러 책에 통달하였는지, 그리고 삶과 죽음, 권도(權道)와 정도(正道), 변화의 이치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군대의 기예는 장수의 통솔에서 비롯되지 않고, 다만 교육하는 군사의 지휘에만 좌우된다고 한다면, 옛날과 지금의 천하에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겠습니까?
만약 오늘날 장수가 군율을 엄격하게 하여 잘 통솔했다면, 군대가 교만하게 욕심만 탐하여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어찌 이처럼 심해졌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은 “장수는 있으되 병사가 없으면 혹 민정(民丁)으로 적을 막아낼 방도가 되지만, 병사는 있으되 장수가 적임자가 아니면 스스로 태워버려지는 폐단을 피할 수 없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오호라! 우리나라에는 장수가 될 만한 인재가 없어진 지 오래되어 장수의 재목을 선발하는 것이 또한 어렵습니다. 선발하는 방법을 어찌 무신 중에서만 찾겠습니까? 충장공(忠壯公) 권율(權慄)과 충목공(忠穆公) 이정암(李廷馣)은 문음(文蔭) 출신이었으나, 선조대왕(宣祖大王)께서 그들을 발탁하여 등용하였으므로 중흥의 대업을 이룩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오늘날 본받아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원래 인재가 넘치는 나라로 일컬어졌는데, 다만 과거 시험으로만 선발하였기 때문에 재주가 있는 인사들이 내려오는 습속에 얽매여 충분히 양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뛰어나게 걸출하여 쓰임에 합당한 사람도 또한 없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만약 마음으로 진실하게 찾는다면 꿈속에서도 나타나고 밭을 갈고 낚시질을 하는 사람에서도 만날 수 있으니, 어찌 옛날에만 좋은 일이 있었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많은 신하 중에서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을 잘 선발하여 군정(軍政)을 오로지 맡도록 하되, 그가 배운 것처럼 기강과 군율을 명확하게 하고 통솔을 엄격하게 하여, 항상 큰 적이 앞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위급한 상황에 대응하게 합니다. 나라 안에서 뛰어난 인물을 구하는 것은 오직 나라에 큰 복이 될 것입니다. 또한 전하께서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른바 정도(正道)를 따르고 사설(邪說)을 배척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夏)·은(殷)·주(周) 3대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주(周)나라가 쇠퇴하자 공자께서는 『춘추(春秋)』를 지어 후세의 난신적자(亂臣賊子)를 경계하였으며, 일찍이 이르기를 “나의 도는 하나로 관철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 양자(楊子)와 묵자(墨子)가 온 천하에 두루 퍼지자, 맹자는 말하기를 “양자와 묵자의 도가 끊어지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두드러지지 못한다. 내가 어찌 논쟁을 좋아하여 이러하겠는가? 나는 부득이해서 그런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무릇 도는 하나일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옛날 성현들이 후세를 걱정함이 매우 컸습니다.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에 오면 혹은 노장사상, 혹은 불교사상 때문에 1,400년 동안 참된 유학자도 없었고 훌륭한 치자도 없었는데, 송(宋)나라의 덕이 매우 밝아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정이(程頤)가 계속 나와 경전과 끊어진 학문을 전승하여 후세의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였고, 주자(朱子)는 여러 성인의 글을 모아 절충한 이후에 도학이 온 천하에 밝게 빛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비록 기자(箕子)의 8조의 가르침이 있었으나, 문헌으로 증명할 수가 없어 거의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성스러운 신령이 서로 계승되어 유현(儒賢)이 배출되었으니, 이들이 업으로 한 것은 공자와 맹자의 도학이었고, 전한 것은 정자와 주자의 학문이었습니다. 백성을 교화하여 풍속을 이루고 문물이 빛나 번창하였으니, ‘소중화(小中華)’라는 칭송은 참으로 이 때문입니다.
근래 이후에는 세상이 망하고 도가 희미해져 이교(異敎)가 서쪽에서 몰려 들어오고,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 속으로 달려 들어가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여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지난 해 겨울에 일종의 동학(東學)이 영·호남의 사이에서 일어나 이것이 번성하여 무리를 이루었고, 그 가르침을 널리 알리니, 관찰사와 장수들이 금단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달에는 그 무리들이 수 십 년 전에 처형을 당한 최제우(崔濟愚)의 일로써 우두머리의 원통함을 풀어준다고 하면서 임금이 가까이 계신 곳에서 방자하게 상소[伏閤]를 올렸습니다. 만약 그 죄를 논한다면 처벌을 하여도 오히려 가볍지만 한 번 타이르자 모두 물러갔으니, 이것은 성덕의 교화가 미친 것이며, 이단을 물리치는 방책은 바른 것[道]을 어떻게 지키는지에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유학의 풍토를 크게 떨치고 선비의 기상을 권장하여 교화를 일으키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신은 저 무리들이 날마다 성하고 달마다 번성해진다고 들었는데, 이는 수령들의 탐욕과 학대가 매우 심해 백성들이 살아 갈 수가 없음이며, 그 무리들 속으로 들어가면 돈과 곡식을 주고 너와 내가 없이 행동한다고 합니다. 저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마음이 상한 것을 슬퍼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어찌 백성이 변해서 벌레와 뱀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난 번 학문을 일으키는 일로써 내리신 열 줄의 조칙은 정녕 거듭 반복되어 임금의 바른 뜻이 있도록 하셨으니, 신은 매우 우러러 흠모할 따름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진실로 바른 것[道]을 지키는데 힘을 쓰는 것이 단지 문구에만 그치지 않도록 하십시오. 예(禮)로써 산림(山林)의 선비들 속에서 도를 이끄는 사람을 불러들여 국자감의 임무에 제수하고, 바야흐로 초야에 있는 인재를 선발하여 성균관에 나와 날마다 글과 예를 배우게 함으로써 나아가 마음을 닦았다는 말이 있도록 하며, 날마다 글의 뜻을 강론하여 도학의 근원을 선택하도록 하며, 또한 군현의 향교를 모두 육성한다면 선비들의 기상을 다시 떨칠 수 있어, 다만 보고 듣기에만 좋은 것이 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또한 유사(有司)에게 명령하여 뇌물을 탐하는 아전 몇 사람을 팽형(烹刑)시키고 곤장을 치거나 가둠으로써 하나를 벌하여 백 사람에게 권장하는 방도로[一罰百戒] 삼으시고, 관찰사를 엄하게 훈계하여 공적에 따라 승진시키거나 내쫓아 백성들을 따르게 하고 보호하여 그들을 편안히 기거하게 한다면 떠나고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모을 수 있고, 이단에 빠졌던 사람들도 바른 길로 향하게 할 수 있어 백성들의 풍속을 크게 변화시키는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무릇 이와 같이 한다면 정학(正學)은 날마다 일어나게 되고 백성들은 편안하게 되어 사설은 자연스럽게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전하께서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상의 7가지 조항은 알기 쉽지만 뜻은 원대하고, 말은 간단하더라도 이치는 매우 지극하니, 사람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버리지 마시고, 반드시 스스로 전하의 마음을 단호하게 결심하여 몸소 먼저 그것들을 행하시고 시행하는 조치들이 뜻대로 된다면 실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서울 각 관청과 각 도·읍이 백성의 폐막을 취사선택하여 그대로 두거나 없애는 것은 주관하는 신하의 일과 관련되므로, 그 누가 감히 왕명을 잘 받들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100무(畝)의 토지와 10칸의 집을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면, 그 자손이 된 사람은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우며, 검소하게 먹고 절제가 있도록 사용하여, 항상 혹시라도 선대의 업적을 땅에 떨어뜨릴까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우리 전하께서는 5백년 종묘사직과 3천리 강토로 선왕들의 간절하고 큰 업적에 부응하신다면, 항상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신성하고 아름다운 성심을 맞이하고 이어가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물며 성상께서는 총명하시고 특별히 통달하고 뛰어나시어서 큰 뜻을 분발하여 이상적인 정치를 도모하여 이룰 수 있는데, 지금 나라의 형세가 계속 이와 같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진실로 성상의 마음이 크고 공평하지 못하시고, 보필하고 도와주는 인재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은 그득히 절통합니다.
옛날에 이윤(伊尹)이 태갑(太甲)에게 말하기를 “오직 하늘은 친하게 하는 것이 없고, 잘 공경하는 것에만 오직 친하며, 백성의 나라에는 항상 마음속에 품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어진 것이 있어야 품을 수 있으며, 귀신은 항상 음향하지 않는데 능히 걱정스럽게 음향하게 하여야만 하니, 하늘과 같은 자리는 어려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전하께서도 이 태갑과 같이 하루아침에 뉘우치고 깨달아서 능히 공경하고 능히 어질며 능히 정성스럽게 한다면, 하늘이 친하지 않고 백성이 따르지 않으며 귀신이 음향하지 않겠습니까? 하늘이 친하게 하고 백성이 따르고 귀신이 음향한다면, 또한 어찌 억만 년 동안 끝없는 아름다움을 걱정하겠습니까? 만약 바로 눈앞의 국가 계책으로도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근래에 모르는 사이 생겨난 근심거리가 도시와 시골이 모두 같은데, 칙서와 교서가 여러 차례 내려갔는데도 징계하여 그치지 않은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지난 겨울 포도청 장수를 임명한 이후에 서울의 도적들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지방의 화적(火賊) 또한 모두 자취를 감추었으니, 인재를 얻은 효과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는 것 또한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신의 상소를 의정부에 내려 보내어 모든 조치를 시행하도록 하나같이 신의 말과 같게 하시고, 만약 3년 안에 성과가 없다면 전하를 속인 죄로 처벌하여 망령된 말을 일삼는 사람을 경계하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신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것을 견디지 못해, 절실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천만 번 매우 간절히 기원합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이 상소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