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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명 : 제1장 해산대례사[第一章 海山大禮師]
날   짜 : 음력 1868년 1월 21일 (양, 1868? 2? 14?)   
해산대례사(海山大禮師)는 곧 시천교(侍天敎) 제2교조(第二敎祖)로서 해월대신사(海月大神師)의 고제(高弟)이다. 제세주(濟世主)가 강생(降生)한 45년, 명치천황(明治天皇) 명치 원년조선전이조태왕(朝鮮前李朝太王) 5년, 서력(西曆) 기원 1868년 무진년(戊辰年) 정월 21일(양력 2월 15일)에 경상도 상주군(尙州郡) 낙동하면(洛東河面) 진두리(津頭里)의 집에서 태어났다.
공(公)공(公)은 성(姓)은 이씨(李氏), 본관은 벽진(碧珍), 이름은 용구(容九), 처음 이름은 우필(愚弼)・상옥(祥玉)・만식(萬植), 자(字)는 대유(大有), 호(號)는 해산(海山), 또는 봉암(鳳菴)이며, 고려(高麗)의 벽진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忩言)이 그의 먼 조상이다. 부친은 이름이 일화(一和)요, 모친은 경주김씨(慶州金氏) 상학(商學)의 둘째 딸이다. 모친이 ‘낙동강에 놀러가서 잉어 한 마리를 잡았는데, 크기가 한 자쯤 된 것이 변하여 용이 되니 오색구름이 그를 따라 몸을 감싸고 공중으로 날아가는’ 꿈을 꾸고 드디어 감동하여 공을 낳았다. 이용구 공은 어릴 때부터 천성이 매우 영리하여 보고 들으면 금방 기억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기이한 아이라고 칭찬하였다.
8세에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진현리(辰峴里)로 거처를 옮겼고, 10세에 한문학사숙(漢文學私塾)에 입학하였다. 12세에 또 충청도 직산군(稷山郡) 이북면(二北面) 사동(巳洞)으로 옮겼고, 13세에 조부모 및 부친의 상을 당하여, 가세(家勢)는 몹시 가난하였다. 18세에 안동권씨(安東權氏) 종학(鍾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19세에 청안군(淸安郡) 석현리(碩峴里)로 거처를 옮겼으며, 20세에 또 충주군(忠州郡) 외서면(外西面) 황산리(黃山里)로 이사하여 몸소 농사를 지으며 효성으로 모친을 봉양하니, 이웃 마을에서 많이들 흠모하고 본받았다.
23세에 비로소 해월대신사(海月大神師)에게 가서 동학의 진리를 물으니, 대신사가 그를 매우 큰 그릇으로 여기고 현묘(玄妙)한 가르침을 주었다. 이후로 이용구 공은 산업(産業)을 다스리지 않고 포교(布敎)를 자기의 소임으로 여겼는데, 3년 동안에 도화(度化)된 신자가 10만여 명에 이르렀다.
계사년(癸巳年, 1893년)에 장녀 봉자(鳳子)가 태어났다.
공(公) : 이용구(李容九)를 일컫는다. 이하 공(公)은 모두 ‘이용구 공’으로 한다.

도화(度化) : 교화(敎化)와 같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