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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정보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장흥 갑오동란수성장졸 순절비 (장흥군 장흥읍 예양4길)
  • 지 역
  • 전남
  • 주 소
  •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예양리 산 6-3
  • 문화재
  • 분 류
  • 기념비
  • 정 의
  • 장흥 전투에서 전사한 부사 박헌양과 장졸들의 추모비
관련 역사적 사실
1894년 12월 5일 벌어진 장흥성 전투는 장흥일대 동학농민군의 승리로 마무리됨. 장흥성을 점령한 동학농민군은 당시 장흥부사였던 박헌양(朴憲陽)을 체포하여 문책하였는데, 박헌양은 되려 동학농민군을 꾸짖다가 결국 처형됨
장흥성 전투에서 성을 수비하다 희생된 수성군 장졸의 수는 96명임. 전사자가 대다수였지만 체포되어 처형된 장졸도 있음. 이때 박영수(朴永壽)와 수성별장 임기남(任璂南, 昶南), 통장(統將) 주두옥(周斗玉), 호위장(護衛將) 주열우(周烈佑)도 같이 희생됨
처형된 박헌양의 시신은 1894년 12월 7일 김용후(金容厚)와 백우인(白禹寅)이 수습하여 장래를 치름. 이후 이들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양호순무영의 우선봉장이었던 이두황은 포상을 베풀고, 1898년 장흥성 북문 밖에 순절단을 설치하기도 함
1899년 기우만이 수성군 장졸을 기리는 비문을 짓고 순절단 옆에 ‘갑오동학란수성장졸순절비’가 세워짐. 1928년 순절단과 순절비를 현 위치인 장흥 남산공원 기슭으로 옮기면서 ‘영회당’을 건립함. 비문에는 박헌양의 공적과 순절한 장졸의 명단이 적혀있음
후손들은 매년 3월 15일 96인의 수성군 장졸의 죽음을 기리는 제례를 올리고 있음
고증내용
「송사집」: 장흥부사 박공 제단비.
「영회당사집」: 고 장흥부사 박공과 순절한 분들의 비문(故長興府使朴公及各位殉節碑文).
「영회당사집」: 순절한 수성 장병의 명부(守城將兵殉節錄).내무참의(內務參議)에 추증된 장흥부사 박헌양(朴憲陽), 기실(記室) 박영수(朴永壽), 수성별장(守城別將) 전 사과(前 司果) 임기남(任璂南), 수성통장(守城統將) 전 통덕랑(前 通德郞) 주두옥(周斗玉), 수성호위장(守城護衛將) 전 수문장(前 守門將) 주열우(周烈佑), 수성천총(守城千摠) 김창조(金昌祚), 그의 증조(曾祖) 김장곤(金壯坤), 여갑섭(呂甲燮), 최응륜(崔應倫), 전 오위장(前 五衛將) 최성두(崔成斗), 전 내금장(前 內禁將) 김규화(金奎華), 전 오위장 김태우(金泰佑), 여학인(呂學仁), 전 동지(前 同知) 손성모(孫誠模), 김민조(金民祚), 이봉주(李俸柱), 송재영(宋在永), 여무섭(呂武燮), 전 동지 여동윤(呂東允), 전 만호(前 萬戶) 신응태(申應兌), 전 사과 김주립(金柱立), 김주오(金柱五), 여동근(呂東根), 송승묵(宋承黙), 손창국(孫昌國), 이홍서(李洪瑞), 신동채(申東采), 손여근(孫汝根), 신동신(申東信), 김기삼(金基三), 주채곤(朱采坤), 김흥두(金興斗), 서관종(徐官宗), 송재섭(宋在燮), 엄희교(嚴熹敎), 신현립(申鉉立), 김연조(金連祚), 신현섭(申鉉燮), 김덕민(金德敏), 임태옥(任泰沃), 전 사과 김천기(金天祺), 신응연(申應淵), 조봉국(趙奉國), 전 사과 주창영(周昌英), 김문조(金文祚), 송재완(宋在完), 오필근(吳必根), 주점순(周点順), 임병원(任炳元), 박제규(朴在奎), 임병숙(任炳琡), 전 통덕랑 여형탁(呂亨鐸), 조복암(趙福巖), 임정화(任正華), 손봉식(孫奉植), 조한길(趙漢吉), 김희진(金喜鎭), 주복현(周福鉉), 김칠두(金七斗), 송낙진(宋洛鎭), 이화민(李化玟), 김석현(金錫鉉), 김영만(金英萬), 손민돈(孫玟敦), 신천동(申千同), 손봉규(孫奉圭), 주이훈(周伊勳), 장낙도(張洛道), 최정두(崔定斗), 김병엽(金秉燁), 김양균(金陽均), 박팔홍(朴八洪), 김청길(金靑吉), 조금암(趙金巖), 장동석(張同石), 이영근(李永斤), 정승문(鄭升文), 김준삼(金俊三), 김덕손(金德孫), 김분실(金分實), 김청산(金靑山), 김갑록(金甲祿), 장순삼(張順三), 오만길(吳萬吉), 주몽길(周夢吉), 오춘반(吳春伴), 김유신(金有信), 오부조(吳夫祚), 양규화(梁圭化), 하영암(河永巖), 서윤숙(徐允叔), 이성민(李成民), 이태문(李太文), 김명숙(金明叔), 임익선(林益先), 김익두(金益斗), 주봉묵(朱奉黙) 이상 모두 96명의 신위(神位)이다.
「영회기」: 영회단(永懷壇). 12월 7일 선비 김용후(金容厚)와 백우인(白禹寅)이 몰래 시신을 거두었는데, 입고 있던 두루마기로 시신을 싸서 시장의 모래에 묻었다. 읍(邑)의 점주(店主) 이매암(李賣巖)이 책실(冊室)의 시신을 거두어 성안의 요충지에 보관하였다.…(중략)…12월 15일 유림 고광익(高光翼)이 출신(出身) 조경승(曺璟承)과 함께 소모관을 보고 성주(城主, 장흥부사)의 시신을 거두는 일을 말하고, 물러나서 선비 김좌현(金佐鉉)·조덕승(曺德承)·전병추(全秉秋)·김예현(金叡鉉)·김한익(金漢翊)과 함께 관(棺)과 명주를 준비하여 평화(平化) 죽봉(竹峯) 아래 깨끗한 땅에 초빈하였다. 그 때에 아전 엄찬교(嚴瓚敎)·신도익(申道益)·조공일(趙共日)이 함께 시신을 수습하였다. 12월 25일에 서실(書室)로 옮겨 초빈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호상(護喪)을 맡은 아전은 송신묵(宋愼黙)과 신필규(申必奎)이었고, 지공(支供, 음식접대)을 맡은 사람은 주창도(周昌都)였다. 12월 28일에 성주의 아들인 진사(進士)가 분상(奔喪)하였고, 다음 날에 성주의 막내동생 별솔(別率)이 내려왔다. 을미년(乙未年) 1월 2일에 기실(記室)의 아들인 전서(典書)가 분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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