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0월 13일 동학농민군이 홍천 내촌 물걸리 동창을 불살랐다는 소식을 들은 지평현감 맹영재는 홍천을 거쳐 서석에 집결한 농민군을 토벌하러 가는 길목에서 사인순을 포함한 농민군 30여명을 죽였다. 10월 22일 솔치에 머문 뒤 10월 23일 강원도 내륙지방의 최대격전지인 서 석으로 진입하였다. 사인순 묘소의 묘비는 1993년에 건립되었다.
고증내용
소모관 맹영재가 보고한 바로는 지난 10월 21일 행군하여 홍천 장야촌에 이르러 비적 30여명을 쏘아 죽이고(<갑오실기>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9>> 74쪽
10월 21일 신시 쯤 조개대로 들어가서 전진하는 적의 형세를 알아보려 했더니 길이 끊겼기 때문에 창수 10명을 적들의 모양으로 꾸며 고깔을 씌워 먼저 보냈습니다. 비류 4명을 사로잡아 처음으로 장야촌에 진을 친 것을 알았습니다. 즉시 행군하여 총을 쏘아 잡은 자가 20여 명입니 다. (<갑오군정실기> <<동학농민혁명 신국역총서6>> 287쪽
사인순 <청주사씨족보> 임신년(1872) 12월 25일 생. 기일은 10월 20일.
1999년.2.11 장평1리 후손 사명환 증언(당시 73세) - 사인순은 동학농민혁명 이전부터 집안 을 돌보지 않고 동학을 전파하러 다니는데 열성이었으며 동학농민혁명 때 집 가까운 상동골에서 포살되어 불태워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