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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정보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보성 웅치면 동학농민군 집결지 (보성군 웅치면 일림로)
  • 지 역
  • 전남
  • 주 소
  • 전남 보성군 웅치면 중산리 57-6 일대(웅치면사무소)
  • 문화재
  • 분 류
  • 기타
  • 정 의
  • 장흥전투를 앞두고 웅치 일대 동학농민군이 집결한 곳
관련 역사적 사실
1894년 10월 경, 전라지역의 동학농민군 주력부대가 공주로 북상한 이후 장흥부사 박헌양을 주축으로 장흥·강진지역의 동학농민군에 대한 압박이 시작됨. 이때 장흥·강진지역의 동학농민군은 이에 대응하여 세력을 집결함
이러한 정세에 맞물려 보성군 웅치면의 접주 구교철(具敎轍) 휘하의 동학농민군 수천 명이 1894년 11월 21일 웅치에서 봉기함. 그리고 곧 장흥군 대흥면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과 합류함
이들은 11월 26일 장흥 동학농민군과 합류하여 회령진, 벽사역, 장흥부 관아, 강진관아, 전라병영성을 차례로 점령하였고, 12월 11일 장흥부 남문 밖에 주둔함. 그러나 이 일대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남하한 일본군 및 관군과 석대들에서 접전을 벌였지만 패배함
고증내용
「육유재유고」: 부사가 직접 강영(康營, 강진 병영)에 가서 원병(援兵)을 청하여 함께 토벌하려고 할 때에 적이 여전히 웅치면(熊峙面)에 주둔하여 살육과 약탈을 일삼고 있었다. 바로 수성별장(守城別將) 임창남(任昶南)에게 명령하여 가서 토벌하여 승리를 얻었다. 그러나 적이 더욱 흉계를 벌여 적 1,000여명을 크게 일으켜서 고읍(古邑)으로부터 바로 남면(南面) 등지를 공격하였고, 다시 남면으로부터 바로 회령(會寧) 땅에 이르렀다. 그러자 다시 수성별장에게 명령을 하여 나가서 공격하게 하였으나, 저들의 숫자가 많고 우리는 적어 적의 우두머리를 잡지 못하고 돌아왔다.…(중략)…일전에 웅치(熊峙)의 소요에 관군(官軍)을 보내어 몇 놈을 잡았으나 전부 잡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고읍(古邑)과 남면(南面)에 모인 비류(匪類)가 나주(羅州)를 도륙할 것이라고 떠벌려서 더욱 부도(不道)함을 드러냈다.
「영회기」: 박부사가 적의 변고를 우려하여 직접 병영(兵營)에 가서 구원을 청하여 함께 그들을 토벌하였다. 교철(敎轍)의 무리가 지금 웅치면(熊峙面)에서 인민(人民)을 살육한다는 소식을 듣고 수성장(守城將) 임창남(任昶南)에게 관군을 인솔해서 토벌을 하게 하여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논저
논문명(서명) 저자/필자 발행연도 쪽수
이상식 외 1996
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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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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