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고창주(高昶柱, 1858-1895)는 무장현(현 고창군) 동음치면 당산마을 출신으로 전라도 지역에 동학이 확산되던 때 동학의 대접주 손화중포에 입도함. 이후 전봉준 휘하에서 같은 마을의 친우였던 송문수, 문덕중과 함께 구적산(九笛山) 아래 당산골에서 동학농민군을 양성하는 일을 맡음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후 송문수의 부장(副將)으로 출전하여 전남 영광과 무장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관군에 체포됨. 1895년 3월 3일 법무아문에서 재판을 받고 무죄방면되었으나, 귀향하던 중 고부에서 다시 잡혀 처형됨
추모비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되어 고창주의 높은 절의와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움. 비문에 새겨진 고창주의 활동 내용은 지역 원로들과 후손의 증언을 바탕으로 함. 비문은 이기화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