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1894년 4월 7일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한 농민군은 정읍관아를 공격한 후 4월 8일 흥덕으로 진격하여 민가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흥덕관아의 군기고를 부수고 탄환과 창검, 조총 등을 탈취하여 오후 2시경 고창으로 진입하였다. 흥덕은 접주 차치구가 활동하였던 곳으로 집강소 시기인 6월 23일과 24일에는 흥덕, 영광, 부안 등지의 성내에서 100~200명의 농민군이 주둔하고 개혁을 실천한 곳이다.
현재의 동헌은 흥성읍성에 있던 동헌건물을 순조 7년(1807)에 이건한 것으로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규모이다. 문화재청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고증내용
「취어」,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 1, 2007, 77쪽.
1894년 4월 11일 전라감영의 전보
흥덕의 겸관(兼官)이 보고에 의하면 동학농민군이 4월 9일 흥덕관아에 들어가 무기를 탈취하였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고창으로 곧바로 향하였다는 내용.
「양호초토등록」,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 1, 2007, 110~111쪽.
1894년(光緖 20) 4월 12일
초 10일에 도착한 흥덕현 겸임 태인현감의 보고에 희면 초 8일 사시(巳時, 오전 9∼11시) 경에 저들 무리 수천 명이 곧바로 흥덕현 관아로 들이닥쳐 군기고를 부수고 탄약과 창·칼·조총 등을 아무 어려움 없이 탈취하여 동일 오시 경에 곧바로 고창으로 갔다는 내용
황현,『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김종익 옮김, 역사비평사, 2016, 142·143쪽.
농민군이 흥덕으로 오고 나가는 사실에 대한 금구현과 고창현의 보고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