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손화중은 전봉준과 함께 고부봉기를 보국안민의 전국적인 농민전쟁으로 승화시키고 김개남과 함께 총관령을 맡아 동학농민전쟁에 참여하였다. 당시 농민군의 근간 세력은 손화중이 이끄는 동학교도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동학농민전쟁 최대의 승리였던 전주성을 점령하였다. 이후 손화중은 집강소를 설치하고 개혁을 실천하던 중 순조롭지 못함을 인식하고 조기 해산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2차 봉기 시 강력한 나주 민보군을 제어하기 위해 나주·장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1895년 11월 수강산 이씨 재실에서 은거하던 중 이봉우의 고발로 관군에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재실 주변은 낮은 야산이며 이곳을 관리하는 작은 농가 주택이 있다.
고증내용
「兩湖右先鋒日記」,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7, 2010, 279쪽.
음력 1895년 1월 일 미상
고창에 주둔하던 교장 홍선경의 보고에 의하면 1월 11일, 토병들과 힘을 합쳐 손화중(孫化中)을 고부군 부안고면(扶安古面) 수강산(壽江山) 산당(山堂)에서 잡았다는 내용
「札移電존안」, 『동학농민혁명사료총서』17권, 152쪽.
손화중을 체포하여 최편함(崔片椷)에게 일본군 진영까지 압송하게 하였다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