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진천은 9월 18일 최시형의 기포령 직후 동학농민혁명군이 활발한 활동을 벌여서 진압군의 주목을 받았다. 진천에는 북접계열의 대접주 신재련(辛在蓮)이 1만명을 집결하였고, 허문숙(許文淑)이 이끄는 남접군과 대치하였다.
9월 29일에는 동학농민군 일부가 진천관아를 점령한 뒤 무기를 탈취하였다. 동학농민군은 진천읍내를 둘러싼 뒤 동헌에 들어와 현감 안정수(安鼎壽)를 비롯해 공형과 여러 관속들을 결박한 다음, 관아의 무기를 탈취하였다. 이때 진천관아를 점령하는 일에 가담한 한연수・조학희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접주 박명숙 외 1인은 지석부락 천변 숲속에서 살해되었다.
현재 진천관아 관련 유적이 남아 있지 않으며 안내시설도 없는 실정으로, 현 삼수초등학교 주변이 옛 관아터이다.
고증내용
1894년 9월 29일 동학농민군이 점령해 무기를 탈취한 진천 관아터로, 현재 진천 관아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관련 안내시설로 없으나, 현 삼수초등학교 주변지역이 옛 진천관아터이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안내시설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