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1894년 11월 25일,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을 맞아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우금치에서 패한한 농민군은 논산을 거쳐 전라도로 후퇴한 후 전봉준 부대는 11월 14일 밤 강경, 논산 어름에서 김개남 부대와 합류한 후 논산 황화대 등지에서 전투를 벌였다. 동안 많은 농민군이 전사하거나 흩어져 11월 19일 1,000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전주로 들어갔으며 23일에는 금구 쪽으로 이동하였다. 이들은 23일 전주를 떠나 두 개의 부대로 나누어 전봉준은 고부 태인 쪽으로, 김개남은 남원 쪽으로 갔다. 전봉준이 이끄는 6~7 천여 명의 농민군은 25일 원평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일본군 및 관군과 접전하였다. 이날 오전 9시경에 시작된 전투는 오후 4시경에 패배로 끝났다. 이 전투에서 37명의 농민군이 전사하였으며, 관군과 일본군은 각종 총기와 쌀, 가축, 호피, 문서 등의 물자를 노획하였다.
고증내용
「선봉진정보첩」,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8,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2010. 90쪽.
11월 25일 병정 1대와 일본군대 1대를 거느린 대관 최영학이 원평(구미란 전투)에서 1만 여 농민군과의 접전 후 37명을 사살하고 획득한 물건에 대한 내용.
「순무선봉진등록」,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2,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2007. 243쪽.
구미란 전투 전술에 대한 기록으로 농민군은 품자형 형성하고 관군은 사면 포위하였으며 천 보를 사이에 두고 격전 끝에 농민군 37명을 죽였다는 내용
「순무사정보첩」,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1,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2007. 377~378쪽.
11월 28일 구미란 전투 이후 상황 기록-어염집 40여 채가 불탔으며 곡식 수백 석과 민가의 물건들이 모조리 불에 처참하다는 내용
『김제동학농민유적지 현황와 활용방안』,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2011, 20~21쪽. 구술자들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