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이 점령하였던 곳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1894년 3월 20일 무장에서 일어난 농민군은 고창, 흥덕, 부안·정읍, 고부 등지를 점령하고 3월 25일경에는 백산에서 백산대회를 개최하였다. 3월 29일 밤 태인읍으로 들어가 관아를 공격하여 군기를 탈취하고, 군비를 재정비하였다. 그러나 4월 2일에 금구까지 진격했던 농민군은 감영 포군 1만여 명이 농민군을 치러온다는 소식을 듣고 4월 3일 다시 태인으로 후퇴하였다.
고증내용
6~7천 명의 동학농민군은 태인의 동헌과 내아를 공격해 군기를 탈취하고 공형들을 결박했다. 「황토현전투의 전개와 역사적 의의」, 『한국민족운동사연구』 77, 86쪽.
동학 무리가 바로 동헌으로 들이닥쳐 관아의 안채까지 들어와서 관원의 목에 칼을 누었다. 관인과 명부는 빼앗기지 않았지만 무기는 전부 빼앗겼다.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136쪽.
태인읍으로 들어가 곧장 동헌과 內衙를 공격하여 군기를 탈취하고 하루를 머물었다. 「번역 오하기문』, 77쪽.
우선 3월 29일 밤에 태인읍으로 들어가 곧장 동헌과 내아를 공격하여 군기를 탈취하고 거기서 하루를 머물은 다음 4월 1일 오전에는 금구 원평으로 진격하였다. 「제1차 동학농민전쟁 시기 농민군의 진격로와 활동양상」, 『동학연구』 11, 39~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