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내용
만석보, 팔왕보 밑에 필요 없이 신보를 쌓았는데 돈 한 푼 주지 않고 농민들을 사역했으나 물세를 받아 착복한 것이 조 700여 석이었다. 『오동나무 아래에서 역사를 기록하다.』, 118쪽.
본래 만석보는 정읍천과 태인천의 상류 지점에 배들평 농민들이 설치하였으며 예동보, 광산보라고도 불렸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1 – 전북』.
옛 지명은 고부이나 현재는 고부군 정우면 수금리라고 불린다. 『증언록』.
만석보와 팔왕보 밑에 새로운 보를 쌓고 약속과 달리 수세조로 700여 석을 거두었으며 진황지에 대해 당초 약속과 달리 추수 후 강제로 세를 거두었다. 「전봉준과 동학농민전쟁 ① 봉기 - 전주성 점령」, 『역사비평』, 223쪽.
민보 아래에 보를 쌓게하였는데 보를 쌓을 때 남의 산에서 수백년 된 구목을 강제로 도끼로 찍어냈으며 보를 쌓는 일에 민정 1전도 주지 않고 강제로 일을 시켰다. 『전봉준공초』,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