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충청북도 옥천은 보은 장내리 집회 및 전투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장소다. 청산면 남쪽 19번 국도 판수리에서 4km 정도 따라 들어가면 바로 그곳이 한곡리다. 마을 가장 위쪽에 있는 바위인데 큰 바위 여러 개가 서로 기대어 있어 마치 문(問)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해월 최시형이 바로 이곳에 숨어 혁명을 지휘하면서 총사령부와 같은 역할을 했다. 1893년 보은취회를 결정한 곳도 이곳이라고 전해진다. 옥천은 동학 초창기부터 중요한 근거지 중의 하나였는데, 1893년 보은 장내리 집회 당시 문바위골에 동학교도들의 출입이 빈번했다고 전해진다. 옥천은 황간 조재벽 대접주가 활동한 곳으로 조재벽은 1894년 4월 황간, 영동, 옥천 지역의 농민군을 이끌고 금산으로 진출하여 금산 장진산 전투를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1894년 무장기포 이후 이곳에서도 산발적으로 동학교도들이 움직였는데 <동비토록> 1894년 4월 9일자에는 ‘문바위골 작은뱀골 골짜기에도 동학교도가 모여 소요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옥천군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들이 사용했던 훈련장(현재 마을 위쪽의 문암저수지 옆)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마을 입구에 동학의 유래와 유적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설치하여 동학혁명 유적지인 '문바위' 일대를 복원했다. 향후 청산면 교평리에 있는 〈동학혁명군재기포기념비〉도 문바위마을로 옮겨 명실상부한 동학농민혁명 유적지로 발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