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1894년 3월 10일, 최시형은 단양에서 순도의례를 거행하다 단양 관아로부터 압력을 받자 고산 도인 박치경(朴致京)의 주선으로 1884년 6월에 익산 금마면의 사자암으로 은거하였다. 최시형은 4개월간 사자암에 머물며 호남지방 포덕 계획을 성립하였고 이는 호남지방에 동학이 확산되는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사자암은 미륵산 중턱에 있는 암자로 전라북도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보존되고 있다
고증내용
단양 관아로부터 지목받게된 최시형은 1884년 6월, 전라도 익산 금마면 미륵산 동쪽 계곡의 단신으로 사자암에 들어갔다. 『天道敎書』, 布德25年條.
사자암에서 4개월간 머문 최시형은 본격적인 호남지방의 포덕을 진행했다. 『天道敎會月報』. 1926年 9月號.
김개남은 당시 임실군 성밭(청웅면 향교리)에서 훈장을 하고 있었는데 사자암을 직접 찾아와 인도하였다고 한다. 「전라북도와 전주 일대의 동학 포덕과정에 관한 연구」, 『동학학보』 51, 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