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홍계훈은 전주성을 포위하기 위해 완산에 진을 치고 남산, 건지산, 기린봉, 오목대, 황학대, 전주성 성문 주변에 군대를 배치하였다. 이에 동학농민군은 4월 28, 29일, 5월 1일에 진압군을 공격하였지만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했고 5월 3일, 농민군 수천 명이 북문을 열고 우회해 용머리재를 공격했으나 오히려 진압군에 의해 큰 피해를 입고 전주성으로 후퇴하였다.
고증내용
홍계훈은 완산에 진을 쳤다. 오시 무렵에 도적 수백 명이 남문을 나와 멀리 돌아서 투구봉쪽으로 가다가 경군에게 패해 수십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달아났다. 『번역 오하기문』, 95쪽.
도적들이 북문을 열고 성 밖으로 나왔다. 선봉에 선 이복룡이 커다란 깃발을 앞세우고 유안대대를 거쳐 황학대를 지나 곧바로 완산으로 올라갔다. 『번역 오하기문』, 96~99쪽.
전주의 남쪽 완산에 진을 치고 시험 삼아 성내에 대포 3발을 발사하니 적도들이 서문과 남문 양 문을 열고 수천 명이 쏟아져 나와 마치 나는 듯이 우리 진 앞으로 다가왔다. 『양호초토등록』
경군이 완산에 이르러 용두현에 진을 치고 성 안을 향하여 대포로 공격하다가 경기전이 손상(損傷)된 것을 경군에게 알렸더니 경영 안에서 효유문을 만들어, 너희 소원대로 하자 하옵기에 감격하여 해산하였다. 『전봉준공초』
홍계훈은 전주성이 함락된 다음날 아침에야 전주성 외곽 완산에 다다라 남산, 건지산, 기린봉, 오목대, 황학대 등 주변 산과 성문 주변에 군대를 배치해 농민군의 연락과 탈출을 엄히 막았다. 「전봉준과 동학농민전쟁 ② 투쟁 - 반봉건 변혁운동과 집강소」, 『역사비평』, 3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