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금산의 동학농민혁명 지도부는 통문을 돌려 3월 8일에 제원역에 수천명(1천명, 3천명, 5천명)의 농민들이 모였다고 한다. 수천 명의 동학 농민군이 제원역에 모여 죽창과 농기구를 들고 금산읍으로 몰려가 문서와 기물을 불질렀고, 김원택(金源宅) 등은 가옥을 불사른 후 금산 군수에게 폐정 개혁을 요구하였다. 이 당시의 금산지역에서의 봉기를 주도한 인물이 서장옥이라는 점은 이미 많은 연구들에 의하여 밝혀졌다. 그는 제2대 동학교주 최시형이 이끌던 교단 조직과는 다른 노선을 추구하였다. 그는 1892∼1893년 교조신원운동과 외세 배척 운동을 전개하면서 전봉준․김개남․손화중․김덕명 등 전라도의 혁명적 동학 지도자들과 함께 전국적 농민 봉기를 주도하였다.
즉, 제원역에서의 기포는 금산의 동학농민혁명에서 시발점이 되는 중요한 지역이고 중요한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고증내용
제원역은 현재 금산군 제원면 제원리에 있는 제원초등학교(금산군 제원면 제원3길) 본관 건물 뒷편에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제원역은 예로부터 삼례, 오수 등지와 같은 찰방이 있었고, 무주(소천역), 용담(달계역), 진안(단령역), 고산(옥포역)을 관할하는 호남의 주요역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