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하동(河東) 북방리(北芳里) 고성산성(高城山城)은 1894년(고종 31)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의 항일 전적지로 알려진 곳인데, 지금도 고성산[일명 고승당산, 186m] 정상 부근에는 당시 지휘자들이 군사 회의를 개최한 듯한 의자 및 탁자 모양의 돌이 남아 전한다. 당시 진주 지역의 동학농민군 5,000여 명은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에 석루를 쌓아, 신식 무기로써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로 처절한 전투를 벌여 많은 희생자를 내고 패퇴하였다. 지금도 1894년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한 전투를 보여 주는 당시의 유물인 숟가락과 그릇 조각 등이 종종 출토된다고 한다.
고증내용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河東北芳里高城山城)은 1894년(고종 31)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의 항일 전적지로 알려진 곳인데, 지금도 고성산[일명 고승당산, 186m] 정상 부근에는 당시 지휘자들이 군사 회의를 개최한 듯한 의자 및 탁자 모양의 돌이 남아 전한다. 당시 진주 지역의 동학농민군 5,000여 명은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에 석루를 쌓아, 신식 무기로써 무장한 일본군을 상대로 처절한 전투를 벌여 많은 희생자를 내고 패퇴하였다. 지금도 1894년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한 전투를 보여 주는 당시의 유물인 숟가락과 그릇 조각 등이 종종 출토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