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지역에서 동학농민혁명의 두 번째 기포는 1894년 4월 초에 전개된 서산 원벌기포였다. 1984년 1월 고부기 포에 이어 3월 20일 무장기포와 3월 26일경 백산대회로 동학농민혁명이 본격적으 로 전개되자 내포지역의 동학도들에서도 적지 않은 동요가 있었다. 즉 호남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내포지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박인호를 중심으로 한 내포동학이 어느 정도의 조직이 완성되 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통문을 돌리자 홍주 원벌에는 수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대 회가 열릴 정도로 조직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기포는 동학교인을 수탈하였던 ‘이 진사’를 응징하는 것이었는데 이진사는 보현동에 있는 흥선대원군 부친의 묘소 및 주변 토지 관리를 맡은 자로 추측되는데 그는 탐학이 극심할 뿐 아니라 평소부터 소직관계로 마찰을 일으켜 원성이 자자해 동학도들이 공격을 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