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락처
기념재단
TEL. 063-530-9400
박물관
TEL. 063-530-9405
기념관
TEL. 063-530-9451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로고

SITEMAP 전체메뉴

유적지 정보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충주 일본군 위령비 (충주시 기금면 가흥리)
  • 지 역
  • 충북
  • 주 소
  •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창말길 8(가흥리 250-2)
  • 문화재
  • 분 류
  • 기념비
  • 정 의
관련 역사적 사실
일본은 청일전쟁을 위해 부산-낙동-안동-문경-가흥-이천-서울 송파로 연결되는 병참로를 개설하고 수비병을 각 병참부에 배치하여 필요한 물자와 인부를 강제로 조달하였다. 1894년 7월 28일 3개이 병참부가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경성-부산 간에 20군데의 병참부가 설치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충주 가흥에도 병참부가 설치되고 일본수비대가 주둔하였다.
8월에 이르면 충주 가흥 일본군 병참부 주변지역인 충주·제천・단양 일대는 성두한이 지휘하는 동학농민군이 들고일어나 장악한 상태였다. 그리고 9월에 이르면 재기병한 동학농민군이 음성 일대에 집결하여 남하하는 움직임이 나타났으며, 충주 가흥 병참부도 9월 27일 연풍의 동학농민군 공격을 받는 등 공격 대상이었다. 전신선도 절단되었다.
위기에 몰린 가흥 병참부 일본군은 10월 5일 하라타(原田常八) 소위의 지휘 아래 27명의 병사를 파견하여 괴산 지역의 동학농민군 동향을 정찰하도록 하였다. 전투는 다음날 괴산에서 15리쯤 떨어진 애제에서 양측이 조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은 200여명의
사상자를 내었지만, 일본군도 1명이 전사하고 3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고 남북 양쪽에서 협공하는 농민군에 쫓겨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일본군 가흥 병참소터 입구에는 2기의 위령비가 있었다. 하나는 비석에 새긴 것이고, 또 하나는 자연석 바위를 깍아 새긴 비이다. 두 비 모두 1894년 12월(양력)에 새겼다. 자연석의 비문은 현재 많이 마모되었으나, 그 자리에 있다. 현재 충주박물관으로 옮겨진 비석은 크기가 가로 56㎝, 세로 90㎝, 너비 12.5㎝이인데, 하단부 일부가 잘리어 나갔다.
또 하나의 위령비는 일본군 병참부가 위치했던 곳의 언덕 위에 솟은 바위를 깍아 새긴 비이다. 가로 55㎝, 세로 107㎝이다. 비문은 현재 주민들에 의해 훼손되어 판독하기 어려우나, 훼손되기 이전에 확인한 자료에 의하면, 3행 세로로 “大日本帝國 勇士 南海爲三郞 君之碑 明治二十七年十日月有志建之” 라고 쓰여 있다.
현재 잡목이 우거져 있어 접근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주변지역 개발로 언제라도 훼손될 위험성이 있다. 조속한 시실내에 보호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고증내용
일본군 위령비로, 하나는 바위에 음각되어 있고 또 하나는 비석으로 현재 충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곳은 1894년 일본군이 불법적으로 경복궁을 강점한 다음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청일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설치한 충주 가흥 병참부터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비문은 인위적으로 마멸되어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이며, 잡목이 우거져 있고 언제라도 훼손될 위험성이 있다.
논저
논문명(서명) 저자/필자 발행연도 쪽수
충북 하늘 위에 피어난 녹두꽃 김양식 2011
충청북도 동학농민혁명사연구 충청북도 2006
사진(4)

영상
드론VR 사진에 마우스를 올려서 움직여보세요
지도
참고문헌
연관 유적지
이 페이지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56149)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ㅣ 사업자정보확인 404-82-08587 ㅣ 통신판매업신고 2023-전북정읍-0046호

문화체육관광부 전북특별자치도청

예약하기예약

찾아오시는길오시는길

위로

조직도 조직도

조직도 유족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