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조병갑(趙秉甲, 1844-1911)은 조선 후기 문신이며,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고부봉기 당시 고부군수로 재직했던 인물임. 조선시대 탐관오리의 대명사가 된 인물이기도 함
1894년 1월 10일 고부봉기가 발생하고 난 후 조병갑은 고금도로 유배를 갔으나, 1898년 1월 법부 민사국장에 임용됨. 그리고 같은 해 7월에는 고등재판소 판사까지 승진함
1904년 5월 의원면직할 때까지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898년 7월 20일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서울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될 때 조병갑은 고등재판소 판사였을 때임
조병갑의 묘는 조병갑의 고향이자 조씨들의 집성촌이었던 사랑골 일대에 있음. 묘소에는 봉분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