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최시형의 총기포령 이후 세성산에 집결한 동학농민군의 지휘는 천안 출신 김복용과 이희인 접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희인의 본가 집터는 독립기념관의 동쪽 인근 목천관아(목천읍 서리)를 바로 앞에 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이희인 접주는 당시 재산이 넉넉한 상황이었고, 자신의 재산을 팔아 동학 포덕과 세성산전투에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세성산전투 이후 이희인접주는 활동 근거지를 병천 쪽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희인 접주의 본래 목천에 위치한 집은 광복 이후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청산리전투에 참여하였던 이범석이 4.19혁명 직후 선거에 출마하며 잠시 거주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집의 형채는 없고, 터만 남아있다. 이 집터의 뒤편 마을에는 초기 광복군 고위급 참모였던 이장녕 장군의 생가지가 있으며, 집터의 앞쪽 산방천 너머 마을에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초대 의장을 역임한 이동녕 선생의 생가지가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