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동학농민혁명 당시 무안지역에서는 형제나 부자가 함께 농민군에 가담하여 활발하게 활동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삼향의 배규인, 배규찬 형제, 몽탄의 김응문 3형제(應文, 孝文, 子文)와 응문의 아들 우신(禹信), 해제의 최장현 3형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장현(崔璋鉉, 1850-1894)은 자가 문빈(文彬)이며 호는 민제(敏齋)이며, 최선현(崔善鉉, 일명 善泳, 1867-1894)은 장현의 동생, 최기현(崔寄鉉, 일명 炳鉉, 1866-1894)은 장현의 사촌 동생이다. 해주최씨인 이들은 장현의 할아버지 때부터 이곳 석룡리에 터를 잡고 살았다 한다. 논 9마지기에 밭 20마지기로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고, 함평의 향교까지 글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이 마을 일대의 장정 들을 모아 기포하였으며, 마을 앞 논에서 농민군을 훈련시키기도 했다 한다. 마을 앞에는 농민군이 마셨다는 동학우물이 있다. 최장현 등은 임치(臨淄) 첨사가 탐묵을 자행한다는 소문이 있자 농민군을 이끌고 공격하여 임치를 점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은 해제면에서 활동하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고향에서 은거하던 중 이웃 마을 주민의 밀고로 체포·처형되었다고도 하며, 비문에는 나주성 전투에 참여했다가 12월 25일 체포되어 27일 처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주최씨삼의사실적비(海州崔氏三義士實績碑)〉는 그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과 마을주민들이 1973년 봄에 건립한 것이다. 〈해주최씨삼의사실적비(海州崔氏三義士實績碑)〉 바로 앞에 있는 〈석산마을회관〉 뒤편의 들판이 민대들 농민군 훈련지였다고 한다. 마을회관 앞을 지나는 도로명이 동학길로 명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