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1894년 5월, ‘전주화약’이 체결된 후 해남으로 돌아오거나, 거쳐간 동학농민군의 수는 6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총 4,700여 명으로 알려짐. 이들이 해남에 들어올 때 각종 무기를 가지고 들어온 것으로 보임
해남지역 동학농민군은 1894년 7월 무렵에 무안과 영광 일대의 동학농민군과 진도성을 공격하여 점령하기도 함. 그리고 1894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해남과 무안의 동학농민군은 3~4회에 걸쳐 전라우수영을 공격함
전라우수영을 지키던 우수사(右水使)는 동학농민군의 공격을 막기도 했지만, 강진의 전라병영성에 원병을 요청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었음. 1894년 12월 19일에도 동학농민군의 전라우수영 공격이 있었지만, 이때는 이미 관군과 일본군이 진주하고 있었음
이후 일본군, 관군, 수성군은 동학농민군에 대한 본격적인 진압작전을 시작했고, 그 결과 250여 명의 농민군이 체포되어 처형됨. 일본군은 1895년 1월 1일까지 전라우수영에 머물면서 인근 지역의 동학농민군을 체포하고 처형하다가 해남읍으로 이동함